- 위치와 크기가 애매해서요. 이걸 암이라고 해야 할지 어떨지.
수술을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4년 전, 아내의 폐 속에 작은 종양 세 개가 발견됐습니다. 처음에는 흔히 말하는 음성 종양으로 보였지만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담당 의사 선생님은 모양과 크기가 심상치 않다. 조직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했지요.
그런데 하필 이 종양들이 횡격막 근처에 있어서 검사를 하려면, 폐의 4분의 1 정도를 절제하는 수술을 함께 할 수밖에 없다더군요.
만약 수술을 원하지 않으면 3개월에 한 번 추적 검사를 하며 상황을 보는 방법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암이라면 3기 정도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니 결정을 빨리 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다음 검진까지는 한 달, 선택은 오로지 저와 아내의 몫.
그 한 달은 정말 지옥 같은 하루하루였습니다. 폐에 보이는 좁쌀만 한 저 점들이 암인지 아닌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이것을 떼어낼지 말지 선택해야 한다. 행여 암도 아닌 그저 그런 종양 때문에 폐의 4분의 1을 절제해야 할지도 모른다니 너무 밑지는 장사 아닌가. 왜 의사는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을까?
평생 암만 보고 살아온 의사, 그래서 전문의 타이틀이 붙은 하얀 가운은, 어째 이런 것도 모른다는 말인가.
판단을 내릴 수 없자, 결국 저희의 마음은 의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무작정 다른 큰 병원으로 밀고 들어가 암 진단을 다시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같았습니다.
- 위치와 크기가 애매해서요. 이걸 암이라고 해야 할지 어떨지. 수술을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폐암 3기의 5년 생존율은 30%. 이것만 놓고 본다면 당연히 수술을 받는 것이 이성적으로 올바른 판단이지만, 막상 수술을 받자니 두 가지 감정이 저희 부부를 휘감았습니다.
- 굳이 확인사살을 당하고 싶지 않다. 이대로 그냥 살아도 되지 않을까, 아프지도 않은데.
- 만약 암이 아니라면 너무 억울하다. 아닐 수도 있잖아!
그렇게 한주 정도 현실을 외면하다가, 어느 날 밤,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존율이 30%밖에 안 된다는데, 더 늦기 전에 하자.
시기 놓치면 너무 억울할 거 같애.”
그렇게 수술을 결정하고, 코로나가 한참이던 시기 병원에서 꼬박 일주일을 걱정에 떨며 조직 검사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결과는 폐암 3기, 그것도 언젠가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된다는 침윤암.
수술을 해서 암을 제거했음에도 4년이 지난 지금도, 저와 아내는 암을 잘라내어 암이 사라진 몸을 두고, 암과 싸우고 있습니다. 마치 언제 찾아올지 모를 유령을 기다리는 것처럼요,. 그리고 한편으론 암과 함께 찾아올지도 모르는 죽음을 생각합니다.
여기에 더해 암 환자의 남편인 저는, 가끔 어떤 죽음 이후의 삶을 가늠해보곤 합니다. 이 심정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한 문장을 쓰지 못해 지금도 머뭇거립니다.
그런 고민 끝에 기획되고 탄생한 책이 말기암 환자를 돌보시는 김범석 선생님의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입니다.
물론 이 책의 저자인 김범석 선생님도 저의 물음에 속시원한 해답을 주진 못합니다. 그러나 실존적으로 또는 옆에서 죽음을 고민해 본 사람들에게 이 책은 작은 위로와 위안이 되어 줄 겁니다. 최소한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그런 마음이 독자들에게 전달되길 간절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