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작가를 만난 건 따스한 봄날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라는 문장으로 이 레터를 시작하려다, 문득, ‘그랬나?’ 하는 의문이 들어 기억을 다시 더듬었습니다. 달력을 찾아보고 다이어리까지 확인한 후에야 그를 만난 것이 추운 겨울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심지어 만나기 며칠 전 폭설이 내렸고, 그 여파로 무시무시한 한파가 찾아와 코트 따위는 무슨, 무조건 파카야 하며 출근했던 기억까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참 이상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김선우 작가를 떠올리면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어느 따사로운 봄날이 떠오르니 말이죠. 아마도 김선우 작가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주변에 온기를 나눠주는 봄바람 같은.
- <Spring Blossom> by Aureliano de Beruete -
며칠 전 잠이 들기 전 S에게 한 권의 그림책을 읽어줬습니다.《친구의 전설》이라는 책이죠. ISTJ 호랑이와 ENFP 민들레꽃의 이야기입니다. (읽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말 놀라운 책이지 않습니까?)
요즘 드는 생각이지만, S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점점 저를 위한 시간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뭐랄까요, 오히려 제게 힐링이 된달까요?
《친구의 전설》을 읽으면서도 저는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잔잔한 슬픔이 차올라 하마터면 S 앞에서 눈물이 찔끔 나올 뻔하기도 했죠. (정말 세상에는 좋은 책들이 많습니다!) 책장을 덮으면서 S에게 한마디 건네려 고개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아이는 잠이 들어 있더군요. (어디까지 함께 했던 거냐?)
김선우 작가의 도도새 그림을 볼 때마다 저는 그와 비슷한 종류의 슬픔을 느낍니다. 마음을 정화시키는 슬픔이죠. 다소 역설적입니다만, 그 슬픔이 지나가고 나면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몰려오죠.
김선우 작가의 그림들은 하나같이 다채롭고 밝은 색채를 갖고 있습니다. 눈앞에서 보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아름답죠. 하지만 저는 그 그림에서 나는 법을 잊어 멸종되어 버린 한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 비애감을 봅니다. 폭력과 욕망에 훼손된 순수를 봅니다. 화려함에 감춰진 숙연한 애도를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을 더 낫게 하고 싶다는 예술가의 선의를 봅니다.
김선우 작가의 첫 번째 에세이 《랑데부》에는 그림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작가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그가 왜 그림을 그리는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한지, 내일을 위해 지금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같은. 작가가 오래도록 숨겨 왔던 일기장을 보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읽고 났을 때 잔잔한 슬픔을 넘어 따스한 위로를 얻게 됩니다. 찔끔, 눈물이 나올 수도 있고요. 지금 험난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면, 이 책을 권합니다. 그리고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오늘부터 독수리 지지를 철회합니다. 오늘부터 지지관계에서 벗어나 독수리와 저는 한몸으로 일체가 됩니다. 독수리에 대한 공격은 저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새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난 1월 경남 고성과 경기도 파주에 있는 ‘독수리 식당’을 다녀왔습니다. 독수리 식당은 겨울이 되면 먹이를 찾아 몽골에서 한반도까지 3000km를 날아오는 독수리들의 먹이 활동을 돕는 곳입니다. 독수리는 맹금류이지만 사냥을 하지 않고 동물의 사체를 먹는 청소부 역할을 합니다. 사체를 찾기 힘든 환경과 농약에 의한 2차 중독으로 죽은 독수리들을 보고 먹이를 챙겨준 것이 독수리 식당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독수리를 보고 와서 회사에서도 독수리 얘기를 엄청 했는데 레터에도 독수리 얘기를 쓸 거라니까 독수리 덕후냐며 다들 웃으시더라고요.
독수리는 오전 9시쯤 먹이를 먹으러 오는데요, 해가 뜨고 지표면이 달궈지면서 생기는 상승기류를 타고 오기 때문입니다. 독수리같이 덩치가 큰 새들은 날갯짓을 하는 데에 많은 힘이 들기 때문에 기류를 타고 이동한다고 합니다. 커다란 덩치에서 나오는 위엄과 다르게 '삐약삐약, 삐리릭' 하는 아주 귀여운 울음소리를 냅니다. 겁도 아주 많고 땅에서는 동작이 굼떠서 텃새인 까치와 까마귀가 떼로 몰려와 먹이를 지키고 있으면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정도입니다. 제가 찾아간 날에도 200여 마리의 까마귀 떼가 밥상을 지키고 있어서 독수리들은 한입도 먹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ㅠㅠ 먹이를 주는 활동가분들 말로는 일주일을 굶었을 거라는데, 그만큼 겁이 많습니다.
보통 ‘대머리독수리’라고 하는데, 이 말은 중복표현입니다. 독수리의 ‘독’ 글자가 ‘대머리 독禿’이기 때문에 ‘대머리독수리’라고 하면 ‘대머리대머리수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독수리들은 곧 날이 따뜻해지면 몽골로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독수리에게, 그리고 내년에 다시 찾아오는 독수리들에게 정확한 이름으로 인사해 보아요~🙋♀️